[마왕진]

 유우기의 하루는 꽤나 단조롭다. 일단 느지막이 일어나서 씻고, 아침을 먹은 뒤 책을 보거나 성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점심은 어디에선가 튀어나온 간단한 빵들을 먹는다. 저녁에는 성 밖에 뜬 달을 보며 일기를 쓰거나 홀로 체스를 두다가 졸리면 잠에 든다.

 하는 일 자체가 거의 없지만, 그릇만이라도 치우려 해도 식사가 끝난 순간 홀연히 사라지고, 청소라도 하려 치면 이상하게 돌아올 때 광이 나도록 청소가 되어있어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타인의 손을 명백하게 타고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심지어 이런 넓은 성이라면 심심찮게 보이는 동물 한 마리조차 없다.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었다. 외부로 나가는 모든 문은 굳건하게 잠겨있고, 설사 어떻게든 나간다고 해도 밖에 진을 치고 있는 창살은 일말의 희망마저 앗아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는데 자신은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고 있는 마왕성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마왕이라 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는 존재가 아닌가. 어떻게 생각해봐도 자신을 잡아온 이유는 제물, 그 이상의 가치가 없을 텐데 어째서 꽤나 잘 정돈되어있는 모든 행동을 감시하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두며 음식까지 주는 것일까.

 불안해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던 유우기는 언제부턴가, 누구라도 좋으니 타인을 만나고 싶었다. 사실 성 안을 돌아다니게 된 것도 혹시 다른 사람이 있을까, 라는 희망에서였는데 몇 번이나 헛걸음을 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반드시 누군가를 찾아내고 말 것이라는 생각으로 방문을 나섰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온 복도는 오늘따라 유난히 길어보였다. 유우기는 심호흡을 한 뒤 촛불로 간신히 어둠만 물린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소년이 꽤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해서 언제나 발걸음을 돌리곤 했던 곳을 지났다. 조금씩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미지에 대한 기대에서인지, 아니면 긴장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늘 자신에게 많이 다른 것을 가져다주리라는 생각이 왠지 모르게 들었다.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던 유우기는 조금 열려있는 문 하나를 발견했다. 보통 아무도 없다면 닫아두는 게 일반적이니까 저 문이 열려있다는 것은 어쩌면…….

 유우기는 소리를 죽여 걸어가 벌어진 틈 사이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던 찰나…….

 

 “으앗.”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문으로 인해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찰나, 무언가가 그의 몸을 잡았다. 깜짝 놀라 자신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자, 검은 옷과 손이 보였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보고 있는 두 눈동자를 보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남자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 고마..워요."

 

 유우기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감사인사를 하고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처음으로 만난 사람에게 할 말을 고르는 와중, 검붉고 날카로운 눈동자는 한 점의 동요 없이 유우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이름은 뭐야?"

 

 소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답을 하는 것 외에는 딱히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과는 대조적이었다. 아직도 말을 고르던 유우기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어물어물 답했다.

 

 ", 나는 유우기야."

 "유우기....."

 "여기로 와서 사람을 한 명도 못 만났는데 너도 여기에 혹시 잡혀온 거야?"

 "..........아니, 난 여기서 일 하는데."

 

 소년은 한참 뒤에야 답했다. 그제야 얼핏 보이는 그의 옷매무새가 굉장히 단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유우기 역시 다르지는 않지만, 그의 모습은 거의 결벽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 , 그럼 혹시 나 빼고 사람은 없는 거야? 일하면 보게 될 거 아냐."

 "없어."

 

 소년의 말은 단호했다. 그 말에 유우기에게 간신히 남아있던 한줌의 희망과 기대가 사그라졌다. 그래도, 더 이상 그 희망에 묶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존재를 만난 것만으로도 오늘의 유우기는 보상을 충분히 받았다.

 

 "그렇구나.... 그러면, 너는 이름이 뭐야?"

 "...."

 

 소년은 입술을 다물고 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워낙 날카로운 인상이라 그 모습이 마치 화를 내는 것도 같아서, 유우기가 사과 하려던 참이었다.

 

 "나중에 만나면, 그 때 알려줄게. 오늘은 돌아가는 게 어때."

 

 밝지 않아서 유우기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만, 소년이 잠시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그의 대답이 다음에도 만날 수 있다는 작은 기대를 그에게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해칠 의도가 없다는 것도 명확해 보였으니까.

 

 ", 일한다고 했지. 그러면 나중에 또 놀러올게."

 ", 그 때는 기다리고 있을게."


 소년은 유우기가 손을 흔든 뒤 나가는 모습까지 빠짐없이 눈으로 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웃었다. 생각보다 그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다만 그가 불편하지 않게 가능한 보이지 않게 움직이라고 일렀는데 그 때문에 자신이 있는 곳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다른 사람이라도 살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유우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자신의 성에 들이는 것은 썩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그를 매일 만나기에는. ……. 생각보다 꽤, 많이 부끄러웠다.

 자신과 닮았으면서도 분위기는 전혀 다른 순박하고 귀여운 소년을 막상 눈앞에 두게 되니 하고 싶었던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마왕이라는 자가 인간인 소년 한 명으로 자신의 페이스를 잃는 모습은 꽤나 우스웠다.

 그래도, 그가 다른 사람으로 처음 본 게 자신이며, 다음에 다시 만날 약속을 잡는 것이 일보 전진이라고 생각을 하면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과연 어떨까. 결론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자신은 이 성에서 무엇을 해도 뭐라 하지 못하는 자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의 심장이 따르는 대로 소년을 사랑하고, 그를 이 성에서 최대의 대우를 해줄 것이다.

 ‘마왕은 즐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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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펀님께 드리려고 했던 마왕진연성인데 너무 오래 걸렸읍니다.... 오래걸렸으면서 짧고 재미없어 죄송합니다 orz


주제는 마왕의 유우기 짝사랑이었습니다 리퀘 정말 감사합니다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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